최근 호반그룹과 한진그룹의 한진칼 지분 경쟁이 상당히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11월 4일 한진칼 공시에 따르면 호반그룹 측 지분율이 20.69%로 올라서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의 20.58%를 넘어섰다. 2022년 사모펀드 KCGI로부터 한진칼 지분을 인수해 2대 주주가 된 지 약 4년 만에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지분 차이는 불과 0.11%포인트다. 조원태 회장은 이미 325,000주를 추가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예정대로 거래가 완료되면 지분율이 다시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한진칼 주가는 지분 경쟁 소식에 급등했다. 11월 5일에는 19만 400원에 거래를 마쳤으며, 4거래일 동안 주가가 약 55% 상승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호반그룹은 당장 경영권을 확보하기도 어려워 보이는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한진칼 주식을 계속 사들이는 걸까?

한진칼을 차지하면 대한항공을 지배할 수 있다
우선 한진칼이 어떤 회사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다. 쉽게 말해 한진칼의 경영권을 확보하면 대한항공을 포함한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진칼은 단순한 투자회사가 아니다. 한진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다.
호반그룹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호반그룹은 2022년 KCGI가 보유하고 있던 한진칼 지분을 인수하면서 주요 주주로 등장했다. 이후 계열사를 통해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으며, 결국 조원태 회장 측을 넘어 최대주주가 됐다.
이번 추가 매입 과정에서는 호반산업이 한진칼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호반산업의 지분율은 기존 0.17%에서 0.71%로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계열사를 활용해 주식 변동 공시 의무를 우회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다만 호반그룹은 계열사가 자체적인 투자 판단에 따라 주식을 매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장기간 꾸준히 확대해 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최대주주가 됐다고 경영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
호반그룹이 최대주주에 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원태 회장 측에는 델타항공과 산업은행 등 우호주주로 분류되는 투자자들이 있다.
현재 알려진 주요 지분을 살펴보면 조원태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20.58%, 델타항공이 14.90%, 산업은행이 10.58%, LX판토스가 3.83%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단순히 합산하면 약 49.9%에 달한다.
물론 이들이 모든 주주총회 안건에서 조원태 회장과 동일하게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현재의 지배구조를 고려하면 호반그룹이 20.69%의 지분만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한진칼에 투자했다. 11월 6일에는 항공산업 재편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보유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원태 회장 역시 37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지분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결국 당장 경영권이 호반그룹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호반그룹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호반그룹이 원하는 것은 경영권일까, 투자 수익일까?
개인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실제로 한진그룹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장기적인 전략이다.
지금 당장 경영권을 확보하기는 어렵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주주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산업은행이 언젠가는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고, 다른 주요 주주의 입장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호반그룹이 지속적으로 지분을 늘린다면 이사회 진입이나 경영 참여를 요구할 수 있는 영향력도 커지게 된다.
두 번째는 투자 차익 실현이다.
이 부분도 상당히 흥미롭다.
호반그룹은 과거 LS 지분 투자에서도 상당한 수익을 거둔 전례가 있다. 당시 LS 주식을 매입한 뒤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약 1,000억 원의 시세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진칼 역시 상당한 평가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증권업계에서는 호반그룹의 한진칼 평균 매입단가를 약 5만 9,800원으로 추정했다. 이후 한진칼 주가는 지분 경쟁이 부각되면서 19만 원대까지 상승했다.
물론 실제 수익은 각 계열사의 매입 시점과 가격, 향후 매도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주가가 높다고 해서 그 가격에 보유 지분 전체를 매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호반그룹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상당한 투자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는 협상력 확보라고 생각한다.
경영권을 완전히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20%가 넘는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라면 무시하기 어렵다. 중요한 경영 사안이나 주주총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호반그룹은 당장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보다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다. 호반그룹은 현재까지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로 밝히고 있다.
국민연금과 산업은행이 중요한 이유
이번 지분 경쟁에서 앞으로 지켜봐야 할 곳은 산업은행과 국민연금이다.
산업은행은 10.5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항공산업 재편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금 회수 문제가 다시 논의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움직임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의 주요 주주이며,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한 바 있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호반그룹 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민연금은 자체적인 의결권 행사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이사회 구성이나 주요 경영 안건을 둘러싼 표 대결이 발생한다면 국민연금의 결정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처럼 양측 지분이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상황에서는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입장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주가가 급등한 지금, 투자자들은 무엇을 봐야 할까?
호반그룹과 조원태 회장의 지분 경쟁이 부각되면서 한진칼 주가도 크게 상승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한진칼의 주가가 상승한 이유가 기업의 실적 개선 때문일까, 아니면 경영권 경쟁에 따른 지분 매입 기대감 때문일까?
물론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급격한 주가 상승에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진칼은 주요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이 많아 실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주식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런 종목은 매수세가 집중되면 주가가 빠르게 상승할 수 있지만, 반대로 시장 분위기가 바뀌면 하락 폭도 커질 수 있다.
경영권 분쟁이 끝나거나 추가 지분 매입 기대감이 사라진다면 현재의 높은 주가가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단순히 호반그룹이 최대주주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결국 호반그룹은 무엇을 얻을까?
나는 이번 한진칼 지분 경쟁이 단기간에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반그룹이 지금까지 투자한 자금과 꾸준히 늘려온 지분을 생각하면 단순한 단기 주식투자로만 보기에는 상당히 큰 규모다.
그렇다고 당장 대한항공 경영권을 가져오는 것도 쉽지 않다. 조원태 회장 측의 우호지분이 탄탄하고, 산업은행 역시 현재로서는 지분 매각에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호반그룹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지분을 더 확보해 경영권에 도전할 수도 있고, 주요 주주로서 영향력을 높일 수도 있다. 또는 적절한 시점에 보유 지분을 매각해 상당한 투자 수익을 실현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주가가 크게 하락하거나 지분 경쟁이 장기화되면 호반그룹 역시 상당한 자금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호반그룹이 반드시 경영권을 가져와야만 성공하는 싸움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다.
경영권을 확보하면 그룹의 새로운 성장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보유 지분의 가치를 높이거나 투자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으로 조원태 회장의 추가 지분 매입이 예정대로 진행되는지, 호반그룹이 다시 지분을 늘리는지, 그리고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어쩌면 이번 한진칼 지분 경쟁은 단순한 경영권 싸움이라기보다 거액의 자본이 동원되는 장기적인 기업 투자 전략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